14세기 중기 유럽에 대유행한 이래 흑사병(黑死病: Plague)이라고도 하는 페스트가 퍼져 수천 만 명이 사망한다. 지금 우리가 <페스트>를 읽어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을 통해 전념되는 이 병은 하층, 상층 관계없이 걸리면 죽음을 의미한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전세계를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 천연두, 결핵 같은 전염병은 수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21세기에도 다르지 않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그리고 지금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영증 등은 의학과 의료 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도 전 인류가 고통 받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 영국을 포함하여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서유럽은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결국에는 외출자제령(Stay-at-Home Order)이나 외출금지령(Shelter-in-Place Order) 까지 발동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상황은 극복하겠지만, 많은 희생자가 나온 다음일 것이다. 카뮈의 페스트는 이렇게 반복되는 재난의 한 단면을 고립된 도시 속에 그려내었다.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걸작이라 찬사 받은 이 책에서 까뮈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죽음이 창궐하는 폐쇄된 도시 오랑에서 삶을 긍정하고 죽음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본질과 희망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위세를 떨치는 세력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체 그냥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낼 것인가?
(1940년대 어느 해) 4월 16일 아침, (알제리 해안에 위치한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진찰실에서 나오다 계단 한복판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본다. 별 생각 없이 쥐를 치워버리고 거리를 걷다 문득 ‘쥐가 나올 곳이 못 되는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사소한 사건은 이후 벌어질 중대한 사건을 예고하는 최초의 표지였으나 아무도 내일의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쥐들이 햇빛 비치는 곳으로 나와 죽고, 이어서 사람들이 사망하자 시민들은 깨닫게 된다. 일상을 영위하던 평범한 도시가 특별한 공간이 되어 갔다.
까뮈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를 통하여 “재앙 중에 배운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사람들간의 연대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우리의 기록도 그러해야 할 것이다.
카뮈에게는 개인적인 상황이란 없다. 한 상황이 모든 사람의 상황이 되고 공동의 대응만이 해결 할 수 있다. 페스트는 개인의 일이 집단의 관심사가 되고 집단에게 들어 닥친 사건 때문에 개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페스트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외부란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삶의 터전이며 그 터전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카뮈는 이런 인식에 통찰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통찰력 덕분에 인간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타인과 연대하고 폭력에 저항하며 삶의 의지를 키울 수 있다.
<페스트>의 배경인 알제리의 오랑 (oran)
알제리 제2의 도시인 오랑은 알제리 북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인구는 150만 명 정도이다. <페스트>에서 오랑을 평범한 도시이자 알제리 해안에 있는 프랑스의 도청 소재지에 불과하다고 표현한다. 보기 흉한 도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한다. 대부분의 프랑스 본토인들이 오랑을 알제리가 독립하기 전 식민지가 아닌 자기들의 영토로 인지하고 있었다.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독립을 반대했다고 한다. 독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폭력과 희생은 무의미했다고 보았다. 실재로 알제리 주민들이 일으킨 독립 전쟁에서 많은 사상자가 생겼지만, 프랑스가 알제리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생긴 폭력에 대해서 카뮈는 침묵하였다. 그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카뮈는 자신을 포함한 개개인이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봤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연대 의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페스트> 속, 오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오랑에서 페스트가 창궐하자, 오랑의 사람들은 외부와 격리되고 고립된다. 그 도시에 갇힌 사람들은 전염이 되었든, 안 되었든, 도시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죽음을 기다리게 된다. 죽음을 목전 둔 사람들이 직업별로 유형이 나뉜다.
- 의사 리외 : 묵묵히 페스트에 걸린 환자를 보살피며 자신이 할 일을 한다.
- '보건대'를 조직한 타루 : 페스트가 종식돼 도시가 축제 분위기일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타루는 페스트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 기자 랑베르 : 취재차 왔던 오랑에 온 랑베르는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오랑을 벗어나고자 한다.
- 범죄자 코타르 : 사람들이 페스트에, 공포에 질식하는 모습을 보며 즐긴다.
행정 업무 처리가 마비되자 오히려 자유의 몸이 된 코타르는 페스트가 잦아들자 이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 신부 파늘루 : 페스트는 인간들의 죄악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라고 설파하고 돌아 다닌다. 신의 영험만이 치료 가능하다며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다 결국 죽는다. 죄없는 어린 아이마저 고통스런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점점 더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 커지고, 마침내 한계치를 넘어가자 이성이 깨어난 인간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한다.
무력함, 죽음의 공포에 지배 당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기 시작한다. 죽음의 공포에 무너지기 보다는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페스트에 당당히 맞서보겠다는 하나의 결의가 형성된다.
카뮈는 마지막 여운을 남긴다. 마침내 페스트가 사라졌다는 경쾌한 환호를 들으며 의사 리외는 그러한 기쁨이 항상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살아남아 또 다시 언젠가 인간이 살고 있는 행복한 도시에 죽음의 공포를 몰고 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간략한 소감
연대는 소수의 영웅이 아닌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페스트가 잠잠해진 이후의 상황을 카뮈는 이렇게 묘사한다.
"리외는 무엇을 얻었는가? 페스트를 겪었고 페스트에 대한 추억을 가졌다는 것, 우정을 경험했고 우정에 대한 추억을 가졌다는 것, 애정을 알게 되고 언젠가는 애정에 대한 추억을 갖게 되리라는 것, 그가 얻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페스트 그리고 삶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인식과 기억뿐이었다. 타루가 싸움에서 이긴다고 말한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알베르 카뮈는 일상의 관례와 허위를 깨닫고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계몽주의를 통하여 개인의 자유와 책임의 중요하게 여기듯이, 자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사회와 조직에 대하여 책임을 가지고 바꾸려는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카뮈는 창궐하고 있는 페스트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힘을 합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타루가 보건대를 조직하고 그랑, 랑베르, 리외, 파늘루처럼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을 모여 페스트를 퇴치하는데 노력한 것처럼 지금의 코로나바리어스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문제 인식과 해결 방식에 대해 연대의식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리외는 타루의 행동을 절대 과장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보건대를 조직한 것이 페스트를 퇴치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카뮈는 페스트라는 문제에 직접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모든 사회나 조직은 여전히 수많은 문제점과 병폐들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이 문제라고 보지 않고, 굳이 내가 나서야 하겠느냐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이 여전하다.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차츰 나아져야 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가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 의자와 상관없이, 혹은 타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 할 필요가 있을까. 태어날 때는 선택권이 없었지만, 죽을 때는 최소한의 준비와 살아 있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서 떠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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