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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여행/책과 함께하는 담론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하먼 멜빌의 단편 소설은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필경사 바틀비」**는 그가 남긴 걸작 중 하나로, 주인공 바틀비의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반복적인 말은 그의 삶의 방향성을 상징합니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거부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적 기대나 규범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을 따르는 태도로 해석될 수 있죠.

 

필경사 바틀비는 어느 순간부터 줄 곧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하다가 결국 삶을 거둔다.

하먼 멜빌의 짧은 단편 소설이다. 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하는 모습에서 용기와 가련함이 융합된 모습이 그려진다.

필경사-바틀비-하먼-멜빌

 

바틀비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거부하면서도 그 결정을 고수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의지에 따른 삶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의 고독하고 비참한 운명은 용기와 가련함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바틀비는 결국 자신의 선택에 고립되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은 긴 여운을 남기며 독자에게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과연 나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할 수 있을까? 나의 삶에 대하여....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 바틀비 외 나오는 사람들**
터키: 약 60살
니퍼스: 약 25살
진저 너트: 12살

먼저 나로 말하자면 젊어서부터 줄곧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깊은 확신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p8

나는 젊었을 때 평탄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최고만이 최상의 삶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십즈음에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오만이였는지를 호되게 알게 되었다. 늦게 깨닫게 되어 그동안 살아 온 세월에 감사해야하는지, 원망을 하여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비록 서류를 얼룩지게 할지언정 노년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p16

요즘은 건강도 예전같지 않아서 일까. 어떤 노년이라도 그 사람의 살아 낸 시간에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나이 들어야 비로서 제대로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전례가 없고 몹시 부당한 방식의 위협을 받으면 그 자신이 지닌 가장 분명한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 이것은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모든 정의와 이성이 반대편에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p34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

p38

다른 사람들에게는 좀더 고결한 역할이 주어졌을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내 사명은, 바틀비 자네가 머무르기로 결정하는 기간만큼 사무실을 자네에게 제공하는 것이야

p71

사명...
내 인생의 사명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인색하고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끊임없이 긁어대면 그들보다 관대한 사람들이 품은 최선의 결의마저 결국은 지치게 마련이다

p72

어떤 판단에서 어느 만큼 주위의 의견을 따라야하는지
어려울 때가 있다. 나는 최선이라 생각되는데 주위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면 망설여진다. 바틀비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고 ‘안하는 것을 택하는 삶’을 살아내었을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바틀비가 완벽하게 필사를 해서 확인 작업을 거절하는가 생각했다. 그러면서 ‘안 하는 것을’ 택하는 바틀비의 용기가 통쾌했다. 하지만 끝내 사는 것을 안하는 선택을 한 바틀비가 안쓰럽고 짠하지만 그의 행동과 선택을 지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비난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가 선택하지 않은 삶의 시간들이 어느 누구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일 초 일 초 이기도 하지 않은가...
옮긴이 공진호님은 바틀비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게 아니다…어떤 행위를 부정한다기보다, 그 행위가 기정사실화된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즉 ‘하지 않음’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선택, 이 두 가지를 긍정하는 것이다.”

살아가야 할 조직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용기있는 바틀비의 말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