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산다면 ‘나를 살아 보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경계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조심하십시오
p568
p585 우리의 삶에도 온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결같은 전진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친 에이해브 혼내주고 싶다~~
p641 제 132장 교향곡
에이해브의 독백과 스타벅의 대화를 읽으며 에이해브를 조금은 이해하면서 연민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에이해브의 광기와 열정이 싫다.
p662 추적 부분을 읽으며 내 심장도 덩달아 고동치는 느낌이다. 에이해브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지만 모비딕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에이해브가 두번째 추적에서도 스타벅에게 본선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스타벅 너만은 살아 남아 달라는 마음 이었을까?
p665 흰 고래도 인간도 악마도 이 늙은 에이해브의 진정한 본질, 가까이 하기 어려운 그 본질은 건드릴 수 없어.
나는 에이해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모비딕과 청새치의 차이가 ‘모비딕’과 ‘노인과 바다’의 차이 일까?
‘고래’라는 단어가 주는 가슴 떨림은 80년대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들으며 청춘을 보낸 사람들만의 정서인지 궁금한데 적어도 나에게 고래는 단순히 큰 물고기 이상의 의미이다. 그런 고래와 함께한 728페이지에 달하는 시간 여행은 행복하기보다는 복잡한 기분이었고, 관심 없는 부분을 읽어내야만하는 부담이었고, 유쾌하지 않게 자꾸 나를 돌아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좋게 말하면 ‘꿈을 위해 열정을 쏟는’ 이지만 다르게 말해 욕심이 많았던 나는 에이해브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에이해브에게 모비딕은 단지 복수하고픈 원수일 뿐일까? 그리고 원수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에 인생을 다 걸어도 되는걸까? 복수가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고 꿈이나 이상이 될 수도 있는걸까? 그야말로 망망대해에서 밤낮없이 모비딕을 찾아 헤메는 에이헤브를 보며,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대비 되었다. 혼자서 결국 청새치를 잡아서 돌아 오지만 다른 물고기들이 다 먹어서 뼈만 남는 노인 때문에 쿠바의 바다 코히마르(Cojimar)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